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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대제 봉행 연기 안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5월 3일 예정이었던 종묘대제를 11월 7일 거행되는 추향대제(秋享大祭)로 연기합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 변경 내용
 

행사명 기존 변경
종묘대제 5. 3. (일) 11. 7. (토)


※ 일정은 추후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 문의 : 한국문화재재단 활용기획팀 02-3210-4803
 

 

안녕하세요 예술과 사람이 만나는 곳 알팅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한번은 봐야할 공연 '종묘제례악' 입니다 입니다.

 

매년 종묘에서 열리는 조선왕조 역대 군왕의 신위를 모시는 제사음악인 종묘제례악이

2020년5월3일 일요일날 진행됩니다

 

종묘제례악이 무엇인지는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2020/04/08 - [국악에 대해서] - 조선 역대 군왕의 신위를 모시는 음악 - 종묘제례악

 

조선 연대 군왕의 신위를 모시는 음악 - 종묘제례악

안녕하세요 예술과 사람이 만나는 곳 알팅 입니다 오늘은 '종묘제례악' 에 대한 포스팅 입니다. 잘은 몰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관람했을만한 음악이지요 우리나라에 지정된 여러 문화..

rtingrting.tistory.com

 

종묘제례악(종묘제례)

일자 : 2020.05.03(일)~2020.05.03(일)

공연시간 : 9:00 ~ 17:00

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장소서울 종로구 종묘(영녕전, 정전)

주최 :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ㆍ한국문화재재단요금무료

요금 : 무료

ttps://www.chf.or.kr/c1/sub6.jsp

 

종묘제례악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종묘대제'라고도 합니다.

실외에서 진행되며 400명정도 인원이 관람할 수 있고 선착순 입장입니다

관람시간이 길기때문에 편한시간에 나들이겸, 데이트겸 궁중음악 한곡 듣고 오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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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묘제례악' 에 대한 포스팅 입니다.

잘은 몰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관람했을만한 음악이지요.

 

우리나라에 지정된 여러 문화재 중에 국보 1호는 '숭례문'!, 보물 1호는 '흥인지문'!

그럼 중요무형문화재 1호는??

바로 지금 설명할 '종묘제례악'이 중요무형문화재 1호입니다.

오늘도 음악을 들으면서 종묘제례악에 대해서 알아보시죠!

국립국악원 토요 명품 공연

 

종묘제례악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음악으로,

악기로 연주하는 기악, 노래로 부르는 악장, 그리고 의식무용인 일무 이렇게 악가무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교를 기반으로 세워졌던 조선은 '효'를 굉장이 중요시 여겼는데요,

'종묘제례악'은 국왕이 효를 직접 실천하는 나라의 최고 행사였기에 임금이 직접 종묘제례를 이끌었으며 참여인원은 7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행사였으며 방대한 규모만큼 물론 그에걸맞는 음악, 춤, 음식등 엄격하고 정중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역사

문헌으로 보면 종묘제례라고 할 수 있는 의식음악은 신라시대때에 체계적으로 행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더 넓게 뒤로 가보면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 등이 제례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종묘제례악의 기원은 고려 예종(1116년)때 중국 송나라로부터 대성아악을 들여올때 함께 들어온 음악입니다.

(1116년에 들여온 대성아악은 아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앞서 설명한 편종 편경등 이때 많은 악기와 음악들이 수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송나라 음악이 본질적으로 우리의 체질에 맞지 않아 송나라의 아악은 점차 침체되고 쇠퇴하는 현상이 일어났고 조선왕조로 전승될때는 중국계 음악인 당악과 우리나라의 향악이 섞여서 연주되었습니다.

이를 세종이 대대적으로 재정비하여 아악을 복구했는데 세종은 "종묘제례악의 기원이 중국인데 나의 조상들이 살아 있을 때는 조선 음악을 듣다가 죽어서 제사를 받을 때에는 중국 음악을 들으니 그것이 도리이겠냐" 

하여 중국식 음악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식으로 곡을 만들고 정비합니다.

 

세종의 둘째아들 조선 7번째왕인 세조는 아버지 세종이 작곡한 '정대업' '보태평'을 중심으로한 음악으로 종묘제례악을 재편성하여 연주했습니다.

여러 전란으로 인해 잠시 중단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했지만 세조 때 만들어진 형식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전승되고 있습니다.

 

종묘제례악의 현재

고려 예종때 들여온 종묘제례의 전통은 조상신 숭배와 효의 개념에 관한 고대 중국 문헌에서 유래하지만 이러한 음악들의 형태는 현재 중국에서는 볼수 없고 세조 때 만들어진 형식으로만 우리나라에만 존재합니다.

이렇게 현재까지 전승된 종묘제례악은 그 가치성이 인정되어 2001년에 유네스코에서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왕실 제사음악이 550년 동안 보존된 음악은 동북아시아에서 유일하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정전의 제사가 1년에 네 차례로 줄어들고, 의식의 절차도 매우 간단하게 축소되었습니다.

8월15일 광부 이후에도 종묘 제례는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1975년도에 들어서야 종묘 제례를 올리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다시 시작되었고 지금은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전통적인 의식대로 대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마치며

따뜻한 봄날 5월 첫째주 일요일 종묘제례악을 감상하러 가는것은 어떨까요??

http://me2.do/Gdbnqm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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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기 소개 2번째 포스팅으로 백악지장, 악기의 우두머리라고 불리었던 거문고 입니다.
거문고 연주를 들어보면서 거문고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거문고 독주곡 일출 - 고보석 

저번 포스팅에서 우리나라에 고유의 악기 2가지 중에 가야금을 소개해 드렸죠

오늘은 그 두가지중 한가지가 바로 '거문고' 입니다.

 

거문고는 6개의 명주실이 이어져 있으며 둘째 셋째 넷째 줄 아래 에 16개의 괘(프렛)가 고정되어있고
나머지 3줄은 안족으로 놓여져 있습니다.
거문고는 가야금과 달리 술대라고하는 대나무를 가지고 연주합니다
현악기지만 술대로 타악기적인 느낌을 내는 거문고만의 맛이 있는데 그 맛이 기가막히다고 하네요 ㅎ

거문고

거문고의 역사

거문고는 고구려의 대표적인 악기로 

고구려의 재상 왕산악이 진나라로부터 선물받은 칠현금을 참고해서 만든 우리나라 고유 악기입니다.

옛날에 진나라 사람이 칠현금을 고구려에 보냈다. 고구려 사람이 그것이 악기인 줄은 알아도 그 소리와 연주법을 알지 못해, 나라 사람 중 능히 그 소리를 아는 사람을 후히 상주겠다고 하였다. 그때 제2상 왕산악이 그 모양은 그대로 두고 제원을 많이 뜯어고쳐 (새 악기를) 만들고, 겸하여 100여 곡을 지어 연주했다. 그러자 검은 두루미가 날아와 춤추었으므로 현학금(玄學琴)이라 하고, 뒤에 줄여 현금(검은고)이라 했다.1)
「악지」(樂志) ‘현금’(玄琴)

고구려의 거문고

거문고의 '거문'은 고구려를 뜻하는 설과, 

검은학이 날아들었다 하여 '현학금'이라 불리다가 '검은(학)'고 ->거문고로 불린다는 설이 있습니다.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망하면서 '대금'과 함께 통일신라의 '천존고' 라고하는 보물창고에 보관되고 있다가 

'옥보고' 라고하는 인물이 거문고를 가지고 지리산에 들어가 거문고를 독학하면서 알려지고 전수되기 시작했습니다.

 

고구려 거문고의 실물 유물은 없지만, 고분벽화에는 흔히 거문고나 그 원형악기가 등장합니다.

 

무용총 벽화의 거문고 2종

통일신라의 거문고

고구려의 거문고는 신라의 삼국통일과 함께 신라에 수용되고 한반도 전역에 퍼진 것으로 보는데요

『삼국사기』 「악지」는 ‘신라 옛 기록’을 인용하여, 거문고의 신라 수용과 정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음악인으로 옥보고()와 신라인 귀금()을 언급합니다.

신라 사람 사찬 공영의 아들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금을 배운 지 50년에 손수 새 곡조 30곡을 지어 이를 속명득에게 전하고, 속명득은 이를 귀금선생에게 전했다. (귀금)선생 또한 지리산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신라 왕이 거문고의 도가 단절될까 두려워하여 이찬 윤흥더러 그 음악을 전할 수 있도록 하라 이르고 (윤흥에게) 남원의 공사를 맡겼다. 윤흥이 부임하여 총명한 소년 안장, 청장 2명을 골라 산중에 배알하고 배움을 전하게 하였다. (귀금)선생이 이들을 가르쳤으나, 그 은밀한 것은 전하지 않았다.

윤흥이 아내와 함께 (귀금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 임금께서 나를 남원에 보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선생의 기예를 전하고자 함인데, 어언 3년에 선생께서 감추시고 전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내가 (돌아가) 복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고는, 윤흥은 술(병)을 받들고 아내는 잔을 잡아 무릎걸음으로 나아가 예와 정성을 다한 뒤에야 (귀금선생이) 감추었던 <표풍> 등 세 곡을 전하였다. 안장은 그 아들 극상과 극종에게 전하고, 극종은 일곱 곡을 지었다. 극종 이후 거문고로써 업을 삼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악지」(樂志) ‘현금’(玄琴)

 

고려의 거문고

고려의 속악(: 향악)은 삼국의 음악과 악기를 물려받았으므로 거문고도 비파(: 향비파), 가야금, 대금 · 중금 · 소금, 장구, 해금, 피리, 박 등과 함께 『고려사』() 「악지」에 속악기로 소개되었습니다..

고려 고종(, 1213~1259) 때 여러 문신들이 놀이 삼아 지었다는 「한림별곡」() 중 한 절에는 거문고를 포함한 여러 악기를 벌여 놓고 밤이 새도록 노는 장면이 나옵니다.

阿陽琴아양금 文卓笛문탁덕 宗武中琴종무듕금
帶御香어향 玉肌香옥긔향 雙伽倻솽개야ㅅ고
金善琵琶금션비파 宗智稽琴종지금 薛原杖鼓셜원장고위 
過夜과야ㅅ景경 긔 엇더니잇고
(葉엽) 一枝紅일지홍의 빗근 笛吹뎍취 一枝紅일지홍의 빗근 笛吹뎍취
위 듣고아 드러지라

아양의 거문고, 문탁의 젓대, 종무의 중금
대어향과 옥기향의 쌍가야금
김선의 비파, 종지의 해금, 설원의 장구
아, 밤새우는 모습 어떠합니까!
매화 가지에 비낀 젓대 소리, 매화 가지에 비낀 젓대 소리
아, 듣고서 잠들고 싶습니다!
제6장, 『악장가사』(樂章歌詞)본

 

조선의 거문고

조선 초기에는 궁중의 문헌이 주를 이루다가, 조선 중기 이후부터 민간의 문헌, 악보, 그림의 비중이 점차 높아졌습니다.

특히 조선 전기부터는 소장자의 이름이 있는 악기 실물도 더러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종실록』 권132 「오례」()에 따르면, 궁중 혼인의례인 가례()와 사신 접대 의식인 빈례()의 음악에 거문고를 편성했고.

함께 수록한 거문고 그림은 거문고의 여섯 줄, 열여섯 괘, 술대 등을 뚜렷이 알아볼 수 있게 표현되었습니다.

 

『세종실록』 권132 「오례」 중 ‘가례서례’(嘉禮序例)의 거문고
실물로 전하는 조선시대 거문고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5세기 문인 탁영( 濯 纓 ) 김일손( 金 馹 孫 , 1464~1498)의 ‘탁영금’( 濯 纓 琴 )이다. 김일손 만년인 1490년경 제작한 것으로 확인된 탁영금은 길이 160 cm,  너비 19 cm,  폭 10 cm 로 오늘날의 거문고와 대동소이하다. (보물 제 957호)

시간이 지날수록 거문고는 궁중보다 민중에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는데

조선시대 거문고의 음악과 이론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거문고 악보집들입니다.

16세기 중반부터 단편적인 악보들이 나온 흔적이 있지만, 온전한 형태로 전하는 것으로는 1572년 안상(, 생몰년 미상)이 엮은 『금합자보』(, 일명 『안상금보』, 보물 제283호)가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안상(安瑺), 『금합자보』(1572) 중 <평조만대엽> 시작 부분

 

본래 궁중에서 주로 쓰이던 악기였지만 민간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궁중 의식 음악이 차츰 관악기 위주로 재편되면서 거문고는 궁중에서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비들 방에 하나씩 걸어놓고 있을 정도로 필수품으로 여길만큼 대중적이었습니다

 

거문고의 종류

거문고는 가야금과 달리 종류를 나누지 않습니다.

가야금은 음역대 폭이 좁아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지만

거문고는 16개의 괘가 있어서 국악기 중에 가장 넓은 음역대(3옥타브)를 연주할 수 있고 전조도 용이한 악기입니다.
그래서인지 개량된 악기가 있지만 잘 사용되지 않는것 같습니다. (제 생각)

 

마치며

날렵하면서도 중후한 소리를 내는 거문고 어떠셨나요

국악은 잘 몰라도 국악기 하면 가야금과 거문고가 떠오르는데요

이렇게 읽어보니 우리나라 대표 악기라고 할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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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많이 생소하시죠!!?

어떻게하면 국악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그 첫번째 포스팅으로 대중적인 악기 가야금에 대해서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그냥 읽으면 심심하니까 가야금산조 한곡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

KBS국악대경연 결선무대 대상 추현탁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

가야금의 역사

고대에 우리나라는 중국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음악도 예외가 아니죠!! 

때문에 많은 악기와 곡들이 중국으로부터 넘어와 연주되었는데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연주된 2개의 악기가 있으니 그중 하나가 가야금 입니다(다른 하나는 다음시간에!!) 

 

삼국사기에보면 6세기경 가야국의 가실왕이 여러악기를 참고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가야의 궁중악사였던 우륵에게 명하여 12곡이 작곡되어 연주되었는데 곧 나라가 망하고...

신라의 진흥왕이 우륵을 높이사 가야금이 신라로 전해지게 되었고 우륵의 제자인 계고, 법지, 만덕에 의해서 널리 전파보급되었다고 합니다

가야금 또한 (앞의 거문고와 마찬가지로) 당나라 악기 쟁을 본떠 만들었다. […] 신라 옛 기록에 일렀다. “가야국 가실왕이 당나라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 왕이 ‘나라마다 방언이 다른데, (음악의) 성음이 어찌 하나이리오?’ 하고, 악사 성열현 사람 우륵을 시켜 열두 곡을 짓게 했다. 뒤에 우륵이 그 나라가 장차 어지러워지려 하자 악기를 들고 신라 진흥왕에게 투항했다. (진흥)왕이 그를 받아들여 국원(지금 충주)에 안치하고, 대내마(신라의 제10관등) 주지(또는 법지法知)와 계고, 대사(제12관등) 만덕을 보내 그 업을 잇게 했다. 세 사람이 열두 곡(원문의 ‘열한 곡’은 잘못)을 전수받고 서로 이르기를 ‘이것은 번잡하고 음란하여 아정하다 할 수 없다’ 하고는 줄여서 다섯 곡으로 하였다. 우륵이 처음에 듣고는 노하였으나, 그 다섯 가지 소리를 듣자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기를 ‘즐겁되 방종하지 아니하고, 슬프되 슬퍼하지 아니하니, 가히 바르다 하겠다! 이것을 왕 앞에 아뢰어라’ 하였다. 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삼국사기』 권32, 「악지」(樂志)

시라기고토(신라금) 신라에서 전해져 현재 일본에서 보관중인 가야금

 

가야금 

가야금은 길고 넓적한 몸통(공명통) 위에 안족(, 기러기발, movable frets)이라는 열두 개의 줄받침을 올리고 그 위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열두 줄을 하나씩 음높이 순으로 얹은 현악기로, 각 줄을 오른손 손가락으로 뜯고 튕겨서 소리 냅니다.

이때 왼손은 안족의 왼편을 짚고 누르거나 떨어서 꺾는음(퇴성, 退), 미는음(추성, ), 떠는음(요성, ) 등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를 농현()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가야금은 크게 정악용과 민속악용으로 나누어지고, 20세기 중반부터는 다양한 방식의 개량가야금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 일부는 표준 가야금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가야금의 종류

정악 가야금

정악가야금

풍류 가야금이라고도 불리며 예로부터 전해지는 형태를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12줄의 명주실로 이어져 있으며 비교적 몸체가 크고 줄도 굵어서 더 낮은음을 냅니다.

궁중음악(여민락, 영상회상등)에서만 연주되기 때문에 일반적이지 않고 가격도 비쌉니다.

주로 가야금 전공자들이 가지고 있는 악기입니다.


산조 가야금

산조가야금

정악가야금에서 개량되어진 악기로 좀더 작고 가벼우며 줄간격이 좁아 연주하기 쉽게 만들어졌습니다.

산조(독주)와 민속악 연주의 용도로 악기로 현재 일반인들에게 널리 보급되어 연주되고 있는 악기 입니다

개량된 산조가야금의 형태는 민간에서 수백 년 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나

김창조(1856 ~ 1919) 명인에 의해 처음 산조(調)가 연주되기 시작하면서 19세기후반부터 산조가야금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개량 가야금 

25현 가야금

 

20세기 이후에 여러 작곡가, 제작자 연주자에의해 13현, 15현, 17현 등등 여러 개량된 악기가 많고 현재도 실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개량가야금은 25현 가야금으로 현재 작곡되고있는 창작곡이나 퓨전국악에 가장 많이 쓰이는 악기입니다.

줄이 많은만큼 크고 무거우며 넓은 음역대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

가야금을 전공하는 분들은 이렇게 3가지 악기를 보통 가지고 있습니다

 

가야금의 구조

정악 가야금
산조 가야금

 

 

 

마치며

가야금이 한국 고유의 악기라는 사실 아셨나요??

올려드린 가야금산조 음악은 어떠셨을지 궁금하네요.

앞으로 국악기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국악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국악이 좀더 대중들과 가까워지기를 바라며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국악 컨텐츠는 네이버 지식백과를 주로 참조하여 작성합니다.

p.s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는 문헌을 보고 추측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설들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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